2024년 연말에 쓰는 고전 애니 감상 Avatar : The legend of Aang
※ 줄거리 스포일러 포함
넷플릭스에 아바타: 아앙의 전설 전 시즌(1~3)이 올라왔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 미국 애니메이션 채널인 니켈로디언에서 방영했을 땐 큰 관심이 없었다.
(스폰지밥, 파워퍼프걸 보여주던 그 채널)
배경은 친숙한 동양인데 등장인물들이 영어를 쓰고, 주인공이 까까머리 승려라서 뭔가 거부감을 느낀 듯 하다.
2005년 방영이라던데, 유행이고 뭐고 다 지나간 다음 지금에서야 호기심에 시청을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수년 전 명작이라고 제발 좀 보라고 추천해준 지인에게
콧방귀 꼈던 게 너무너무 미안해 질 정도로 좋은 작품이었다.
아바타의 큰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물, 흙, 불, 공기의 나라는 원래 조화를 이루며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불의 나라 황제 소진의 야욕으로 인해 온 세계가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
전설에 따르면 4개 원소에 통달한 아바타라는 존재만이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다.
하지만 최후의 아바타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은 희망없이 100여 년을 전쟁 속에 살아간다.
아바타는 물 > 흙 > 불 > 공기의 나라 순으로 윤회와 환생을 거듭한다.
아바타: 아앙의 전설의 주인공인 소년 아앙은 남쪽 공기의 사원에서 태어나 수도승들에게 길러졌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세계를 구할 영웅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부담을 느껴 도망치다가 바다에 빠지고
자기방어 체계(?)에 의해 자신도 모르게 얼음으로 몸을 감싸 백 년 동안 동면한다.
약 100년 후 남쪽 물의 부족 소녀인 카타라가 오빠인 사카와 함께 우연히 아앙을 발견한 후
아앙은 동료들과 세계를 지키기 위한 순례를 나선다.
아바타: 아앙의 전설이 개인적으로 좋았던 점을 꼽으라면 우선
전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너무 어둡거나 잔인한 장면이 없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조크가 전쟁이라는 상황에 과하게 몰입하는 것을 막아주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겠지만
작가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전쟁의 공포와 참혹함을 묘사하는데 시간을 쏟기 보단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피어나는 우정과 사랑 같은 인간애를 보여주고 싶은 듯 했다.
어린이 채널에서 상영하는 애니메이션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말이다.
그 다음 좋았던 점은
신성한 신분을 가지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세속적인 선택을 한 주인공이었다.
주인공 아앙은 사원에서 자란 동자승이다.
남쪽 공기의 사원이 고산지대에 있다는 점, 승려의 복식이 황색과 적색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그리고 전생의 아바타가 쓰던 물건을 통해 현생의 아바타를 찾는다는 점 등에서
아바타 아앙은 티벳 불교의 달라이 라마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아앙은 시즌2 최종편에서 한 고승을 통해 아바타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방법을 배울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그 힘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관문에서
사랑하는 친구 카타라에 대한 세속적인 감정을 잊지 못하고 전쟁을 끝낼 힘을 포기하고 만다.
아앙이 이런 결정을 내렸을 때 내 처음 감상은
"아니 뭐라고?!" 였다.
거국적인 관점에서 보면 아앙의 선택은 성숙하지 못하고 이기적이다.
카타라를 잊으라고 한 것도 아니고, 카타라에 대한 '감정'을 못 잊겠다고 뛰쳐나와서는
전쟁광을 무찌르고 세계의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힘을 포기하다니 말이다.
아앙이 단지 승려라는 본분에 충실해서 불교 교리대로
사사로운 감정에 초연해지고 초월자가 되는 전개도 가능했다.
하지만 영화는 지속적으로 대의보다 개인의 신념을, 소중한 일상을 선택하는 등장인물들을 보여준다.
대의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그것은 자기희생을 수반했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대의가 향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이 없다면 그 대의는 빈 껍데기일 뿐이다.
처음 전쟁을 시작한 불의 군주 소진은 불의 제국의 번영과 위대함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했다.
소진이 가진 대의의 대상은 '세상'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 세상에 실존하는 사람과 자연은 철저히 배제당했다.
이런 추상적 대의의 끝은 '새로운 세상을 다시 만들기 위해 다 불태워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라는
광적이고 파괴적인 결론에 다다른다.
자신을 제외한 어떠한 대상에게 지지도 정당성도 얻을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아직 어린 아앙은 아바타로서 세계를 지켜야한다는 데 큰 중압감을 느껴왔다.
공기의 사원 승려들의 기대, 전설을 믿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아앙은 도망쳤고, 악몽을 꿨고, 친구들에게 까칠하게 굴 때도 있었다.
오직 선한 마음으로 그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선량한 생명이 눈 앞에서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아앙은 한 치의 의심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이는 영웅 아바타로서의 역할을 강요당할 때와 다르게 아앙의 내면에 어떤 갈등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이러한 차이는 그 동안 아앙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살필 겨를도 없이
현생의 아바타로 지명된 순간 대의가 먼저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아앙과 동료들의 여행과 경험이 아바타의 대의를 구체화해주었고
마침내 아앙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전능한 힘이 아니라 불의 군주에겐 없는 것
즉 대의가 향해야 할 구체적인 대상인 사랑하는 카타라라는 걸 깨달았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게 작가의 의도가 맞다면, 시즌2에서 아앙이 카타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고 아바타의 힘을 선택했어도
불의 군주를 이기지 못했을 것이고, 시즌3은 카타라에 대한 사랑을 재지각하는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좋았던 점은
수 많은 그렇게 하지 못 할 이유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적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최종 악역인 불의 군주 오자이를 죽이지 않고 그의 파이어밴딩 능력만을 빼앗아
평범한 사람으로 만든 후 여생을 감옥에서 단죄하도록 했다.
아앙은 오자이와의 결전을 앞두고 승려로서 살생을 할 수 없다는 내면의 갈등 때문에
전생의 자신인 전대 아바타들에게 조언을 구한다.
위대한 전대 아바타들은 모두 하나같이 '후회할 선택을 하지 말고, 선택은 단호해야 한다'는 대답을 한다.
다소 오자이의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는 것 같은 뉘앙스의 대답이었다.
아앙 본인이 아바타의 환생으로서 예언에 따라 정해진 운명에 강하게 예속되어 있는 존재이고,
그런 운명을 피하기 위해 도망도 시도했지만 타고난 선한 성정으로 인해 매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앙이 악역을 단호하게 처단해서 후환을 없애는 선택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을 비틀어 자신만의 미래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리즈 내에서 가장 성숙하고 초월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네 파이어밴딩 능력을 빼앗았어. 이제 너는 그 능력으로 아무도 다치게하거나 위협할 수 없을 거야."
끝.